라이프로그


815에 생각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쌀 음식에 관련한 짧은 생각들

내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면서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한 날입니다.
건국이란 말에서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왕조국가도 아니고 특정 계층만의 국가가 아닌 모든 국민이 다 주권을 갖는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건국은 비하할 것도 나쁠 것도 아닌 자랑할 만한 날 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고…

가난했고 어려웠던 때를 거쳐 오늘날의 풍요로운 시대에서 쌀은 무엇일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십 수년간 해마다 몇 번씩 다녔던 일본 출장에 먹었던 음식들을 한번 떠올려 보면 몇번의 면으로 된 식사를 제외하면 거의 매 끼니에 빠짐없이 밥이든 주먹밥이든 오차즈케든 무엇이든 간에 쌀로 된 음식을 먹었습니다.

저의 큰 위장 탓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일본에서 쌀밥이란 것이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옛날부터 일본은 쌀이 부족한 나라였고 제국시대의 일본에 이르러서야 콩과 수수 조 같은 만주의 잡곡을 한반도와 대만에 넘기고 대만과 한반도의 쌀들로 일본의 부족했던 쌀 수요를 채울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기도 해서 강원도와 경북 충청도 등의 산간 지방이나 섬 지방들은 쌀보다 다른 작물로 주식을 삼았고 오죽하면 '섬처녀 시집갈 때까지 쌀 한 가마를 못 먹는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쌀 한 가마가 80kg 이니 지금 성인들이 한끼에 마른 쌀 약 70-100g 정도를 먹으니 1000번 정도 먹을 분량인데 1000번이면 하루에 한끼만 쌀을 먹어도 3년이 안 된다는 이야기로 그만큼 쌀이 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전 일본 농민들은 수확의 80% 이상을 번주에게 세금으로 바쳐야 했고 그래서 궁핍했던 일본의 농민들은 하루 세끼를 죽으로 연명해야 했으며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오키나와를 뺏어간 다음에는 오키나와의 쌀을 본토로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오키나와의 인구수를 가혹하게 조절했으니 한 때는 식량작황이 좋지 않거나 인구가 많이 늘면 오키나와의 임신한 여인들을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게 하여 강제 유산을 시키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그런 강제 인구 조절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쌀이 부족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막부와 번주들의 사치와 함께 일본의 수많은 양조장들이었습니다.

막부와 번주들은 각종 공예품이나 서화 등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장인들을 고용해야 했고 또 호위 무사나 사병을 고용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쌀을 지급해야 했으므로 결국 농민들로부터 쌀을 많이 걷어가야 했고 양조장들은 막부와 번주들에게 진상할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원료가 되는 쌀에 잡맛이 들지 않도록 13분도 혹은 15분도 이상으로 도정을 하면서 엄청나게 쌀을 깎아서 썼으므로 술로 소비되는 쌀의 양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귀족이나 장인 무사와 같은 특수계층을 제외한 일반 일본인들에게 쌀을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그나마 쌀이 풍족했던 시대도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저질렀던 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짧았기에 쌀에 대한 일본인의 집착은 거의 유전자 속에 기억되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물론 지금의 일본 젊은 세대들은 빵이나 국수부터 해서 여러 가지 음식으로 쌀을 대치하고 있지만 전통은 사라지기가 힘들다고 보입니다.

이 역시 한국도 마찬가지로 1970년대까지 봄이면 보리고개라는 우리나라 지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두 개의 고개 중에 하나를 겪어야 했습니다.
다른 하나의 고개는 아리랑 고개였는데 지금은 서울 성북구와 경북 상주에 아리랑 고개라는 명칭의 지역이 생겼습니다.

한국의 쌀 부족을 끝낸 것은 간척을 통한 농지 확보, 댐과 저수지를 만들어 물이 부족한 천수답들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등의 농지 개량과 맛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의 개발, 혼분식 장려, 그리고 풍족해진 식생활 덕분에 한국은 더 이상 쌀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 정부의 창고에 묵은 쌀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방 이후 30년 만에 쌀이 부족했고 귀하던 나라를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었지만 아직도 못내 섭섭한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이름으로 된 우리가 개발한 맛있는 쌀이 귀해서 고시히카리 (月光) 나 히토메보레, 아끼바레 같은 일본의 벼 종자를 재배하고 그 쌀이 비싸게 팔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쌀의 원산지나 품종도 확인하기 힘들게 되어 있어서 더더욱 문제가 되겠지요.

쌀이 그토록 귀하던 나라였고 쌀을 아직도 사랑하는 나라라면 우리 나름대로 최고의 쌀 품종도 만들어 내고 유통구조도 개선해서 진짜 좋은 쌀이 제값 받고 팔리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수입한 찐쌀로 만든 밥을 밥그릇에 미리 담아 놓아서 떡이 된 공깃밥은 안 먹었으면 한다는…

사진은 대만에서 제일의 쌀로 인정받고 있는 타이뚱시엔 지샹샹(台東縣 池上鄕) 지역에서 재배한 고시히카리 (월광) 쌀입니다.



덧글

  • 번사이드 2013/08/15 00:28 #

    예전엔 쌀이 귀했다하는데..지금은 남아돌면서도 제대로 된 쌀밥 한그릇 보기가 힘들죠..
    이게 정말..원산지,품종 확인이 어렵습니다.
    '혼합'표기가 있는 쌀은 작년 수확한 것 조금에 3~5년전에 수확한 묵은 쌀 왕창 섞은 거라 하더군요. 맛있을 리가 없죠. 이런 혼합 표기쌀은 비싼 가격받는 이자카야 주방에서도 버젓이 볼 수 있습니다~
  • 푸른별출장자 2013/08/16 23:37 #

    묵은 쌀은 제과나 양조등의 가공용으로 써야 하는데 묵은 쌀도 국산은 가격이 엄청나니 그럴수도 없고...

    한국있을 때 밥맛 있는 식당은 이천 여주 근방 말고는 본 기억이 가물합니다.
  • 2013/08/15 07:2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푸른별출장자 2013/08/16 23:42 #

    보통은 저것보다 저렴한 것을 주로 먹는데 큰 마음먹고 한 번 사 보았습니다.

    고급 쌀들은 대만의 백화점이나 Welcome 같은 곳의 식품부나 슈퍼마켓 가면 흔히 보입니다.

    저 쌀 가격은 1.5Kg에 200NT 정도니까 약 7200원 정도 줬네요.Kg당 5000원 정도 잡으시면 됩니다.

    저것보다 좀 싸면서도 쌀 맛이 괜찮은 것들은 보통 Kg 당 2500원 / 그냥 무난한 대만산 쌀들은 1200-1500원 정도 합니다.
  • 애쉬 2013/08/19 01:12 #

    마르크스 옹 말씀대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다른 하나의 상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낸다는 건가보네요 ㅎ

    쌀이 다이묘들의 통화로 쓰여서...그렇게 먹기가 힘들었다고 하네요
    다이묘들이 자신의 쿠니(國)를 운영하고 전쟁 준비를 위해서 필요한 통화단위가 쌀이였으니...

    우리나라도 주택이 화폐나 투자수단, 수익창줄의 수단으로 쓰이는 시절이 아직 끝나지 않았죠? ㅎ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콩을 화폐로 쓰느라 먹지 않고 대신 인육을 먹으며 살아가는 지상인....콩을 먹기 때문에 지상인들로 부터 야만인 취급을 받는 지하인이 떠오르네요 ㅎㅎㅎ

    쌀은... 수세기 아시아의 경제와 문화의 분리될 수 없는 중심에 서 있는 아이콘인 것 같습니다.
    밀 보다 출발은 늦지만 밀 이상의 열광적인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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